왜 DJ때 민영화의 첫 스타트를 끊었나?(Mai 칼럼)
2022년 5월 21일 토요일
한국의 공공재 민영화의 시작은 DJ때가 맞다. DJ때 KT가 민영화 되었고, 한국전력, 철도공사 등의 민영화가 논의되었고 준비 작업까지 이루어 진 것은 맞다. 그러나 보수층들은 왜 DJ때 민영화의 첫 스타트를 끊었는지 모르고 DJ때 민영화 시작했다는 단편적인 면만 가지고 여론을 호도하려고 하고 있다.
김대중은 IMF 구제금융을 받던 도중 정권을 잡았다. IMF는 김대중 정권한테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줄 것을 요구하였고 김대중은 IMF의 요구사항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처지라 이에 따라 정책을 세웠다. 돈을 빌려준 IMF는 한국한테 여러가지 요구 사항을 제시했고 요구사항 대부분은 신자유주의적인 성격이 없지않아 있었다. 그 IMF 요구사항 중의 하나가 바로 공공재 민영화이다. 김대중 정부는 이를 거역할 처지가 되지 않았다. 결국 김대중 정부는 공공채 민영화를 준비하게 되고, 전력 생산의 민영화를 위해 한전의 발전 부분은 6개사로 쪼갰으며 철도 또한 상하분리를 통해 운영 부분을 민영화 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한국통신 또한 김대중 정부때 민영화가 되게 되었다.
김대중 정부는 IMF 체제 졸업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고 결국 이것이 결실을 이루어서 2001년 IMF 체제를 졸업하게 된다. 이후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민주당 정권이 유지되었고, 노무현은 김대중 정부의 민영화 정책을 철회하게 된다. 원래 전력자회사를 더 쪼갤 계획이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과 철도 운영 민영화를 철회하고 운영 부분을 공사화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소위 좌적폐로 비하되기도 하는 진보 진영에서는 뻔뻔하게도 노무현 정부가 민영화를 추진했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또한 이러한 기조가 유지되어, 문재인 정부때는 민영화 논란이 없었다.
흔히 IMF나 IMF 사태 등으로도 불리는 외환 위기는 국민의 과실이 아닌 당시 정부와 경제계의 과실로 일어난 사태이다. IMF 사태가 일어날 당시 정권은 국민의힘 전신으로 분류되는 신한국당이 잡고 있었고 이전 정권 또한 장면 내각을 제외한 국민의힘의 전신으로 분류되는 정권이었다. 한국 보수와 경제계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IMF 사태는 한국 보수진영의 과실로 인해 일어난 참사라고 봐도 무방한다고 본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때 공공제 민영화를 추진하게 된 원인인 IMF 사태의 사실상 원인제공자인 보수 진영의 네티즌들은 김대중이 민영화를 시작했다는 사실 만으로 여론을 호도할려고 하고 있다. 필자의 의견을 솔직히 말하자면 이대남으로 대표되는 20대 남성 대안 우파들은 과연 김대중의 민영화 정책이 어떤 원인인지 그 원인의 제공자가 누구인지 알기나 하는지 의문이다. 솔직히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자면, 이러한 우파들의 행태가, 문재인이 중국에 강경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나가 박근혜 정부의 외교라고 아니라고 할 수 없는데 이걸 외면하고 무작정 문재인 정부가 친중이라고 하는 20대 남성 대안 우파들의 행태도 같이 떠오른다.